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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의들을건대4학년1학기/SF와융합인문학적상상력

SF와융합인문학적상상력 15주차

by 공부해열 2024. 7. 2.

15주차

1.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합리성
-피상적으로 볼 때, 예술에서의 창의적 사고를 이야기하는 것과 과학에서 창의적 사고를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통령이 존재함
-예술가는 작품을 창조한다(create)라고 한다면, 과학자는 발견한다(discover)라고 이야기함
-예를 들면 피카소가 없었다면 <게르니카>도 없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함. 예술적 창의성은 주관적인 과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적 창의성의 예인 DNA는 왓슨과 크릭과 독립적으로 존재. 따라서 왓슨과 크릭이 없었더라도, DNA는 여전히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시점에 발견됨
-예술적 창의성- 주관적 과정
-과학적 창의성 - 객관적 과정
-하지만 예술적 창의성은 생각만큼 주관적이지 않고, 과학적 창의성도 생각만큼 객관적인 것이 아님
-과학에서의 창의성 : 이중나선의 발견
-DNA는 19세기 중반에 이미 발견되었고, 20세기 초에 모든 세포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짐
-하지만 DNA는 유전물질의 자리인 염색체 안에서 발견되는데도 불구하고, 염색체 안에는 DNA보다는 단백질이 더 많다는 사실 때문에 단백질이 결정적인 물질이라고 생각함
-DNA 결정을 X선에 노출시켜 보면, 나선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직접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증거는 전혀 없음
-과학적 연구는 단순한 관찰이상이 필요. DNA는 전혀 나선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해석기술이 필요함
-DNA 분자의 나선 형태는 거기 가만히 앉아 있어서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음. 이것은 <창조적 사실>이라고 할 수 있음
-왓슨과 크릭은 DNA가 나선이라는 작업 가정을 채택하였음
-윌킨스가 찍은 DNA의 X선 사진은 왓슨을 완전히 사로잡았음
-이중나선을 제안했던 것은 프랭크린이였지만 그녀는 그 구조를 공식화하지 않았고 그것을 공식화한 사람은 왓슨과 크릭이였음
-그들의 실험은 단번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실패(삼중나선에서 이중나선으로 이동)를 거치면서 이루어짐
-이중나선 구조를 제안한 프랭클린, 윌킨스와 폴링은 발견하지 못했는데 왓슨과 크릭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? 이유 1.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-이론과 경험적 발견 모두-에 기초하여 이론을 세웠는데, 그 연구 결과들이 DNA와 관계가 있었음, 왓슨과 크릭은 모두 고유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음, 이유 2.필수적인 정보를 한데 모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능력을 소유함
-토마스 쿤의 <과학 혁명의 구조>
-쿤이 주의를 기울였던 것은 과거의 과학자들이 현대과학을 기준으로 얼마나 많이 알고 있었는가 하는 점. 쿤이 이를 확인해가면서 현대과학을 기준으로 볼 때 '옳은' 문장은 거의 없었음. 쿤의 이러한 당혹스러움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그의 과학사 연구 방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고 주장
-과학은 객관적 진리만을 언급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함. 과학적 언어는 한 시대에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인정될 뿐이며 이후 얼마든지 변경 가능한 설명체계일 수 있다는 주장
-한 시대의 진리는 한 시대의 패러다임(paradigm)에 불과함
-과학적 진행은 근본적으로 불연속적인 방식으로 진행됨, 축적이 아니라 단절(과학적 혁명)의 현상임
-과학은 사회적 함의를 지닌 믿음체계를 지닌다고 주장함
-과학은 객관적 진리를 다루고 기타 학문은 주관적 성격을 지닌다는 이분법적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한 위대한 과학사가이자 과학철학자임
-예술적 창의성
-피카소의 <게르니카>(와이스 버그)
-과학에서의 창의적 사고도 엄밀하게 논리적이지 않다고 해도 예술은 지나치게 직관적이고 비논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함
-20세기 예술인 <게르니카>는 스페인 내전을 묘사한 것임
-폭격은 1937년 스페인 북부 게르니카의 바스크 지역이 폭격 당한데 대한 반항으로 그렸음
-폭격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(내전에서 승리한 후 독재자가 됨)과 연합한 독일 공군이 행한 것임
-스페인 정부(프랑코의 반대 세력)로부터 파리에서 열릴 국제 전시회에서 쓸 정부의 대형 천막용 그림을 부탁 받고 그린 그림
-폭발적인 창작 활동으로 6주 만에 완성
-게르니카는 곧 파시즘에 대한 저항의 국제적인 상징이 됨
-그림<게르니카> 안에 전쟁의 장면이 없음
-병사도, 폭탄을 투하하는 비행기도, 소총이나 대포도, 탱크도 없고 몇 마리의 동물, 네 명의 여인, 아기, 부서진 조각상이 있을 뿐
-무언가 끔찍한 것이 일어났다고 느끼게 만듦
-단색 처리(검은색, 흰색, 여러 명암의 회색)하여 다양한 색깔이 없음
-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총 마흔 다섯 작품의 과정을 거침
-예비 스케치들이 남겨져 있는데 피카소가 완성되기 까지 과정을 엿볼 수 있음
-피카소의 전체적인 구조를 짜는 데 있어서 체계적이었음(모든 스케치에 중심 캐릭터(말, 황소, 불빛을 든 여자)은 거의 모든 구성 스케치에 등장하고 다른 캐릭터는 덜 등장함
-스케치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피카소가 핵심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
-핵심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일어났을까?
-1935년에 완성한 <미노타우로마키(Minotauromachy); Minotauros (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신화의 괴물)>에 등장하는 불빛을 든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후에 피카소의 <게르니카>작품 속에서 불빛을 든 여인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함.
-즉 <게르니카>와<미노타우로마키>간의 수 많은 일치점을 가지고 있음 - 다시 말해 핵심 아이디어가 유사하다는 점(Chipp, 1988)
- <미노타우로마키>는 투우를 상징하는데 투우는 스페인에서 피카소가 겪은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음
- <게르니카>에도 투우의 뼈대를 포함하고 있음, 황소와 말, 검을 든 사람(조각상), 그 장면을 내려다 보는 관중들이 그것임기마 투우사(창을 든 사람)를 태우던 말도 패스로 보호해주지 않아 종종 돌진하는 황소의 억울한 희생이 됨
- <게르니카>의 한가운데에서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들고 있는 말을 억울한 희생물의 표상으로 볼 수 있고, 피카소의 마음에 그렇게 상징화되었다고 할 수 있음
-따라서 <게르니카>와 <미노타우로마키>는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음
- <게르니카>를 그린 핵심 아이디어는 다양한 생각의 조각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고 할 수 있음 피카소의 고유한 경험의 복잡한 집합의 결과에 불과함
-피카소는 <게르니카>의 요소들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체계적임을 알 수 있음
-단순히 갑작스런 작가의 주관적 감정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음
-동시에 작가가 반전 그림을 그릴 때 작가의 상상력은 작가 밖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음, 즉 경험과 환경
-따라서 상상력도 또 다른 방식의 모방임
-이 모방 속에는 작가 나름의 해석이 있는데 이 해석은 작가의 고유한 경험과 환경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짐
-피카소는 미술사에 박식했고 프란시스코 드 고야(Francisco de Goya)의 작품을 대단히 존경했고 그에 관해 잘 알고 있었음
- <게르니카>에서 오른쪽 떨어지는 여자는 <게르니카>보다 100년 앞선 고야의 <전쟁의 참상>에서 떨어지는 남자를 여자로 바꾸어 표현한 것임
-왓슨과 크릭은 이중나선구조를 개발할 때 자신의 일하는 영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보를 이용함
-완전히 무관한 영역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마술적 행위의 과정을 일으키는 일은 전혀 없음
-피카소도 자신의 이전의 작품을 토대로 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련된 작품을 짜 넣었던 것임
-두 사례 모두 산물(Product)은 비범해도 그 산물을 만든 과정(Process)은 마술적이지 않았음
-창의성은 전문성에 근거함
-열심히 공부해야 함(왓슨과 크릭은 폴링 식의 모형에 뼈대를 만듦/ 피카소는 미술에 관한 방대한 지식에 기초함(와이스 버그<창의성2)
-새로운 아이디어는 느닷없이 튀어나온 아이디어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전에 있던 아이디어에 굳게 뿌리박고 있음
-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지식 기반이 무지하기 때문임
,이중나선구조나 게르니카가 창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님
-새 작품이 새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며 단지 새로운 창의적 작품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임
-창의적 생산물도 선례가 있으며 옛 것의 모방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능력을 의미함
-예술적 창의성은 주관적인 과정, 예술가는 대상을 새로운 존재로 바꾸기 과정임. 피카소가 없다면 <게르니카>도 없다는 하지만 과학적 창의성은 왓슨과 크릭이 없어도 대상은 새로운 존재로 바뀌지 않음
-왓슨과 크릭이 없어도 여전히 DNA는 존재
-예술과 과학은 보이는 만큼 주관적/객관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섬
-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이 더욱 많음
-발견의 종류는 어린아이가 길에서 지폐를 발견할 때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사이에서 DNA의 발견은 어떤 것인가?
-DNA의 발견은 지폐를 발견할 때와 달리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석할지에 관한 이론을 가지고 있어야 함
-이중나선을 발견하는 것은 연구자들이 더 주관적인 것, 즉 연구자의 주관적인 해석의 잣대를 가져와야 함
-지폐발견이 완전한 발견이라면, DNA의 발견은 창조 쪽에 가까운 발견임
-신은 완전한 무로부터의 창조가 가능하다면 피카소의 작업은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냄. 따라서 덜 주관적이라고 볼 수 있음
-미술평론가인 Rubin은 피카소가 이룬 성취의 일부가 과학적 창의성의 특성인 발견이라고 생각 함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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